
성인이 되어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결별해야 했던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단어 옆에 한글로 발음을 적는 것이다. 한국식 주입식 영어를 10년 넘게 공부하고도 미드 한 편 제대로 못 알아듣던 원인이 바로 이 '친절한 한글'에 있었다는 걸 알아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애플'은 'Apple'이 아니다
처음 영어를 배울 때 우리는 'Apple' 아래에 '애플'이라고 적는다. 하지만 실제 원어민의 소리는 '애플'이 아니다. 한글로 표기하는 순간, 우리 뇌는 원어민의 실제 소리(Input)를 듣는 대신 내 머릿속에 저장된 '애플'이라는 한국어 이정표를 찾아간다.
문제는 실제 소리와 내가 적은 한글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이 간극이 쌓이면 아는 단어인데도 들리지 않는 '청취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글 발음을 버려야 귀가 열리는 이유
내가 5개 국어를 접하며 한글 발음 표기를 철저히 배제한 이유는 명확하다.
1. 뇌의 게으름 방지: 한글 발음이 쓰여 있으면 뇌는 소리를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편한 한글을 읽어버린다.
2. 소리값의 왜곡 차단: 외국어에는 한글로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소리들이 존재한다.
(예: 영어의 R/L, 스페인어의 R 떨림 등) 이걸 'ㄹ'로 퉁치는 순간, 그 언어만의 고유한 리듬과 주파수를 놓치게 된다.
3. 맥락과의 결합: 소리를 소리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상황과 목소리가 뇌에 통째로 각인된다.
내가 실천한 '소리 입력'의 원칙
나는 문법 공부를 할 때나 책을 읽을 때 다음 세 가지를 절대 하지 않았다.
- 첫째, 한글로 발음을 적지 않았다.
- 둘째, 눈으로만 단어를 외우지 않았다. 반드시 원어민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결'을 흉내 냈다.
- 셋째, 발음 기호에 집착하기보다 입 모양과 소리의 공명을 따라 하려 노력했다.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확신
처음에는 불안했다. 한글로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읽을지 잊어버릴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지로 적지 않고 반복해서 소리를 노출하니, 어느 순간 단어를 보면 소리가 먼저 떠오르는 단계에 진입했다.
성인이 되어 공부를 시작하면 자꾸만 내 모국어(한국어) 시스템에 새 언어를 끼워 맞추려 한다. 하지만 외국어는 번역기가 아니라 새로운 소리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어야 한다. 한글이라는 익숙한 지팡이를 던져버렸을 때, 비로소 진짜 외국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외국어 공부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 내가 세운 기준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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